INTRO 핫한 플레이스의 힙한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합니다!
‘지금 나오는 노래 완전 좋은데, 이건 다 누가 알고 선곡하는 거지?‘ 이런 생각, 해 보신 적 있나요?
요즘 ‘핫’하다는 거기! 감성 충만한 분위기에 흐르는 노래마저 힙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바로 거기!
이 음악을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에도 넣고 싶은데, 주변 소음 때문에 검색에 실패하는 일이 다반사.
그렇다고 점원에게 물어보기는 조금 부끄러운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핫한 플레이스의 힙한 플레이리스트 – 한 달에 두 번, [핫플힙플]이 전하는 흥미로운 선곡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자료제공: 비스킷 사운드
HOT PLACE <디거이즈디깅>
숙대입구 9번 출구 먹자골목 안에 위치한 레코드 바 <디거이즈디깅>, 여느 레코드 바와 다를 것 없이 바이닐로 직접 앨범을 틀어주지만, 신청곡은 일절 받지 않는다. 오로지 재즈와 흑인음악에 집중하고 있는 이곳은 순간의 특별함을 지닌 그날의 엄선된 플레이리스트를 내세우는 게 특징이다. 레코드 디거인 주인장이 특별히 골라 들려주는 재즈, 알앤비 솔 음악과 일명 ‘철길 뷰’는 독보적인 분위기를 완성하며 이곳을 단숨에 핫플레이스로 만들었다. 세월의 흔적을 품은 벽과 구식 텔레비전, 따듯함을 더하는 주황색 조명 아래 오래된 엘피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노을 밑으로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볼 수 있는 곳, 레코드 바 <디거이즈디깅>을 소개한다.
INTERVIEW <디거이즈디깅>
#1. 숙대입구의 철길 품은 레코드 바
Q. 안녕하세요,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오직 재즈와 흑인음악만을 틀고 있고, 위스키와 칵테일, 와인 등 다양한 주류와 간단한 음식을 판매하는 가게 <디거이즈디깅>입니다.
Q. <디거이즈디깅>은 무슨 뜻인가요
‘Digging (디깅)’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쓰이는 말은 아닌데요, 뜻 그대로 무언가를 파는 행위를 말합니다. 특정 분야를 그냥 좋아하는 것을 넘어 깊게 파고드는 사람을 ‘디거’라고 부릅니다. 레코드를 좋아하는 사람은 ‘레코드 디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비 디거’이죠. ‘디거이즈디깅’은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면 깊게 파고드는 저의 성향이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람이 담겨 있고요. 방문해 주시는 손님께 소개해 드리는 저의 취향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Q. 숙대입구 역에 바를 차리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공간을 알아볼 때 여러 조건이 있었는데요, 그중 가장 중요한 건 ‘생동감과 에너지가 느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숙대 상권으로 결정하기 전까지 정말 많은 자리를 알아보았어요. 빈티지한 감성과 에너지가 돋보이는 을지로, 후암동, 해방촌, 문래동 등 꽤 오랜 시간 알아보다 우연히 보게 된 지금 가게가 마음에 들어 계약하게 되었습니다. 숙대입구 (갈월동과 남영동)는 앞서 말씀드린 상권보다는 규모가 조금 작지만, 동네를 둘러보면 역사가 긴 유명 대학교 상권이기도 하고, 지금은 철수한 미군 부대의 영향으로 과거와 현재가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어서 특유의 소박하면서 따듯한 감성이 매력적인 동네입니다. 지금 위치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첫 번째로 ‘뮤직 바 (Bar)가 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점’, 두 번째는 ‘큰 통창으로 자주 지나다니는 기차와 전철을 멍하니 바라보며 술과 음악을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세 번째로 ‘소음 관련 이슈가 없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꽤 넓은 테라스가 있다는 점’ 때문이에요.
#2. 바늘로 읽고 채우는 공간, <디거이즈디깅>
Q. 빈티지하지만 인위적이지 않은 인테리어, 건물 외부와 연결되는 무드가 인상적이에요. 전철과 기차가 지나가는 게 보이는 탁 트인 창가 테이블 바와 벽의 거친 느낌이 이곳을 더 특별하게 보이게 하는데요. 인테리어 콘셉트 구상은 직접 한 건지, 어떤 의도가 있는지 궁금해요.
멋지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제가 직접 구상했고, 인테리어 시공 업체에 도면을 직접 그려 드리면서 멋진 가게를 만들기 위해 시공업체 실장님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소통하며 공사를 진행했어요. 저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해야 했기 때문에 지금 와서 보면 부족한 점도 많이 보이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가게 한 면에 있는 거친 벽은 인위적으로 만든 것도 의도한 것도 아니에요. 철거할 때 원래 있던 가벽을 뜯었더니 지금의 벽이 나왔어요. 철거 당시에는 가벽 뒤에 어떤 게 나올지 모르지만 일단 뜯었고, 처음 보고는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죠. 그때는 훨씬 더 지저분한 벽이었거든요. 그러다 과거에 지금 가게가 있는 자리에 꽤 많은 가게가 거쳐 갔다고 주변 가게 사장님들로부터 전해 듣게 되었어요. 40년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카페, 민속 주점, 새마을 식당 등 많은 가게가 거쳐갔더군요. 그 오래된 흔적에서 오는 감성과 느낌이 좋아서 조금 깔끔하게 손을 본 뒤 코팅액을 발라 지금의 벽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Q. “바늘로 읽고 채우는 시간”이라는 문구를 봤어요, 바이닐을 트는 공간이라는 정체성을 나타내주는 것 같은데요. 이 시간을 주로 어떤 방식으로 무슨 음악으로 채우는지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바이닐을 트는 공간’라는 가게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위한 헤드카피입니다. 바이닐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바이닐이 바늘로 읽히며 재생된다는 점을 아실 거고요.
손님들께 대외적으로 알려드리는 사실이지만, <디거이즈디깅>은 신청 곡을 받지 않는 가게입니다. 가게의 분위기를 일관되게 유지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고 있어요. 가게에서 트는 음악이 좋아서 방문해 주시는 손님께 평소와 다른, 기대하지 않았던 음악을 들었을 때 생기는 아쉬움을 드리지 않기 위함이죠. 가게에서는 거의 항상 재즈와 소울, 알앤비를 틉니다. 재즈는 쿨재즈 위주로 틀고, 그 외 흑인 음악은 70년대 초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골고루 틀고 있습니다. 요즘 나오는 음반은 거의 틀지 않는 편이에요. 빈티지한 콘셉트를 고수하는 그런 건 아니고 요즘 음악 중에서도 자극적이지 않고 멜로디가 좋다고 생각하는 음악은 꽤 자주 틀어드리고 있어요.
음악이 들릴 때 우리는 그것이 시간의 한 양태라는 것을 잊은 채 멜로디를 듣는다. 오케스트라가 소리를 내지 않게 되면 우리는 그때 시간을 듣게 된다. 시간 그 자체를. -밀란 쿤데라 《농담》 중에서
Q. 그날의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선곡해 주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선곡은 어떤 기준으로 누가 하는지 특별한 비결이나 철학이 있는지?
가게를 시작할 때는 매일 그날 틀 음악을 운영 전에 정해놓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웃음). 하지만 막상 오픈하고 나니, 그렇게 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겐 편협스러워 보일 수 있는 가게인데 그렇게 해버리면 정말 즐기실 수 있는 분들의 범위가 좁아질 것 같아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날마다 선곡을 정해놓기보다는 시간, 그 순간의 분위기에 맞추어 음악을 선곡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화를 하기 위해 오신 손님이 많은 날이면 보컬이 없는 미디엄 템포의 재즈를 주로 틀고, 가게가 기분 좋은 대화로 북적일 때는 빅밴드 재즈나 미디엄 템포 소울/알앤비를 틀어드립니다. 그리고 앨범 단위로 틀 때면, 음반을 바꿀 때 생기는 정적을 의도적으로 내버려 둬요. 음악이 끊기지 않기 위해 디제잉을 하는 날도 있지만, 거의 매일 의도적으로 정적의 순간을 만드는 편이죠. 저에게는 익숙한 음악이지만 손님은 처음 들어보는 음악일 확률이 높고, 새로운 음악을 쉴 새 없이 듣다 보면 귀가 피곤해지기도 하잖아요. 귀가 잠시 쉴 수 있는 시간을 드리는 거죠. 음악이 끊겼을 때의 그 갑작스러운 정적을 통해 우리 삶에 음악이 얼마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제 개인적인 소망도 있고요.
Q. “술은 결국 즐겁게 취하기 위해 마신다고 생각”하시는 거 같은데요. 동의합니다. 데운 물수건, 다양한 주종, 좋은 음악과 분위기 등 즐겁게 취하기 위한 좋은 조건이 갖추어져 있는 이곳, 준비된 술들과 메뉴들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버번위스키와 싱글몰트위스키, 와인, 맥주, 칵테일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다이닝을 하는 가게가 아니기 때문에 식사가 될 만큼은 아니지만, 디저트류를 포함해서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맛있는 안주도 판매하고 있어요.
Q. 음악이 공간에 주는 영향에 대한 사장님의 생각이 궁금하네요.
공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조화롭게 만들어주는 최종적인 요소라고 생각해요. 물론 정적이 어울리는 공간도 많지만, 음악이 필요한 공간이라면, 음악의 장르와 볼륨에 따라 모이는 사람의 부류와 분위기가 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Q. <디거이즈디깅>,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지?
언제나 건전한 가게여야 하고요, 손님이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조금도 서운해하지 않을 만큼 만족스러운 가게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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