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TRO 핫한 플레이스의 힙한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합니다
‘지금 나오는 노래 완전 좋은데, 이건 다 누가 알고 선곡하는 거지?‘ 이런 생각, 해 보신 적 있나요?
요즘 ‘핫’하다는 거기! 감성 충만한 분위기에 흐르는 노래마저 힙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바로 거기!
이 음악을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에도 넣고 싶은데, 주변 소음 때문에 검색에 실패하는 일이 다반사.
그렇다고 점원에게 물어보기는 조금 부끄러운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핫한 플레이스의 힙한 플레이리스트 – 한 달에 두 번, [핫플힙플]이 전하는 흥미로운 선곡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자료제공: 비스킷 사운드
HOT PLACE 프루
북촌 한 골목에 자리한 이자카야 ‘프루’는 그저 작은 술집이지만, 그 안에는 음악과 철학 그리고 주인의 깊은 사유가 켜켜이 쌓여 있다. 가게 이름은 기타리스트 존 프루샨테에서 따왔다. 강렬한 연주, 그와 상반되는 내성적이면서도 소박한 면모, 세상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과 일에 대한 철학을 존경하고 좋아하게 되면서 그의 이름을 가게 간판에 새기게 되었다고 한다. 음악은 이곳에 들어선 손님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첫인사’이자 프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중심축이다.
프루의 날들은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을 그 만의 방식으로 기억하고 응원하는 매일이다. 함께 일했던 이들, 다녀간 손님, 그리고 그 자신까지. 한낱 작은 술집에서 피워낸 마음, 그 마음이 이내 퍼져나가 어딘가에서 다시 이어진다면 그것이 프루가 있었다는 증거라 믿으며.
INTERVIEW 프루

Q. 안녕하세요, 지니뮤직 구독자에게 인사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북촌에서 프루라는 이자카야를 운영하고 있으며 자연과 음악을 좋아하는 작은 사람입니다.
Q. 상호 fru는 기타리스트 John Frusciante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어떤 아티스트길래, 그리고 어떤 면을 흠모하기에 가게의 이름까지 짓게 되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네. 말씀하신 대로 프루는 그의 이름을 딴 가게입니다. 존 프루샨테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라는 얼터너티브 록밴드의 기타리스트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와 그가 속한 밴드의 공연을 보면 즉흥성이 아주 강한 연주를 자주 보여주는데요, 소위 재즈적인 요소가 많은 연주를 하는 록밴드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런 그의 연주를 처음 보고 들었을 때엔 그런 방식이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강렬하고 투박하며 즉흥적이기까지 한 데다가, 연주와 음악 그 자체에 너무도 몰입한 모습이 어딘가 모자라 보여서 웃기다가도 감동 받았죠. 그렇게 흥미가 생겨 그의 모든 음악과 모든 연주, 인터뷰를 통해 그의 생의 전반을 다 샅샅이 찾아봤는데요, 그런 과정에서 강렬한 연주를 하는 사람인 것과는 상반되게 아주 내성적이고 소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심도 있는 이야기들을 들어보니 그가 얼마나 세상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철학과 주관이 바로 선 사람인지에 대한 사실도 알 수 있었습니다. 지적인 사람이었던 거죠. 그렇게 그에게 존경심과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가 비록 록 음악을 위주로 하는 아티스트이지만 그가 좋아하는 음악에는 편견이랄 것이 없어, 그를 알고 난 뒤로는 저도 그가 좋다는 록앤롤 아티스트는 물론이거니와 재즈 아티스트 및 클래식 아티스트까지 폭식하듯 흡수했었어요. 프루는 그런 요소들이 제 멋대로 섞여 있는 이자카야인거죠. 이름 역시 그런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짓게 된 것이고요.

Q. 프루는 'Music, Food, Drink'라는 세 가지 단어가 중요한 공간입니다. 저도 음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Food'보다 'Music'이 앞선 순서라는 게 좋더군요. '이곳은 음식점이지만 그 무엇보다 음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구나'라는 걸 느꼈거든요.
네. 저 역시 음악을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으로 그런 순서를 의식하기도 했어요. 또 세 가지 중 음악은 프루라는 공간에 들어 온 순간 가장 먼저 손님을 맞는 요소이기도 하고요.


Q. 손 글씨 메뉴판을 보고, fru는 메뉴판 또한 주인장이 담고 싶었던 태도나 마음을 전하는 요소구나 싶었습니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제가 느끼기에 그리 잘 쓴 글씨는 아닙니다만 (웃음), 정성만큼이나 정감 가고 믿음이 가는 손 글씨 메뉴판이에요. 손 글씨로 메뉴판을 내놓는 이유와 fru의 대표 메뉴들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잘 쓴 글씨라는 것은 뭘까요? 실제로 종종 제 글씨를 못 알아보시는 손님들도 계셔서 그런 생각을 저도 하곤 합니다. 모든 이들이 좋아하거나 알아볼 글씨가 아니라는 점에는 저도 이견이 없네요. 그럼에도 손글씨로 메뉴판을 만들고 지금까지도 그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제가 그런 수고스러운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겠지요. 잘 만든 음식, 잘 만든 공간, 잘 만든 음악과 같은 것들은 이미 넘쳐나고 있는 요즘 시대지만 프루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공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잘 만들어진 것과는 거리가 있지요. 프루의 메뉴판도. 메뉴판의 글씨도. 그걸 쓴 제 자신도. 단지 스토리가 존재할 뿐이랄까요. 저라는 사람은 잘 쓴 글씨보다 자기답게 쓴 글씨가 좋다고 생각해요. 다행스럽게도 나와 마음이 맞는 몇몇은 그 글씨를 예쁘게 봐주기도 하지요. 그리고 대표메뉴라는 것도 딱히 정해두진 않았어요. 그건 어떤 한 방향만을 손님들에게 제시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어지간해선 메뉴 추천도 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들의 고민과 선택, 헷갈림을 존중하고 싶어요. 그래서 다만 손님 자신이 여기서 어떤 맛을 먹고 싶어 하는지를 궁금해하고 찾아보시길 권한답니다.




Q. 이자카야가 신청곡을 받는 게 독특합니다. 그리고 특정 곡명뿐만 아니라, 장르로도 신청할 수 있는 것과 주인장의 기준을 반영해 모든 신청곡을 다 수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안내도 재미있습니다. 음악을 선곡할 때 어떤 기준을 가지고 계신 지 여쭤볼게요.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정직함을 추구하는 자영업자들은 손님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고민할거라고 생각해요. 저를 비롯한 우리 가게의 식구들도 늘 고민하고 분투하며 애써 찾아와주신 분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애쓰고 있죠. 신청곡을 받는 것도 그런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예요. 프루는 음악을 콘텐츠로 하니까요. 자신이 신청한 음악이 나올 때 기뻐하는 손님들을 보면 행복해요. 꼭 특정 곡이 아니라 장르만 신청해도 된다고 해둔 것은 음악을 트는 저희 입장에서 손님이 어떤 무드를 원하시는지 파악을 하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래도 역시 모든 신청곡을 다 틀어드릴 수는 없어요. 신청곡 용지에 나와 있듯 제 취향에 맞아야 틀어드릴 수 있지요. 그 기준은 다름 아닌 저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안타깝게도 다른 관록있는 LP바의 사장님들의 명확한 기준과 달리, 제 기준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래도 가게 벽면에 제 음악 취향에 대한 정보로 도배되어 있으니 그걸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 역시 마음은 정말 다 틀어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Q. ‘금주의 추천곡’, ‘이달의 시’, ‘이달의 생일자’ 같은 소소한 코너가 있어요. 특히 ‘이달의 생일자’를 통해선 뮤지션의 생일을 챙겨주고 계시죠. 사실 벽 한켠에 걸려 있는 메모들에 불과하고, 누군가에겐 눈에 띄지 않고 지나칠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이에요. 그런데 또 어떤 이에게는 이 공간을 더 특별하게 느끼게 하고, 사랑하게 만드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프루라는 공간의 의의이기도 한데요, 저라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좋다’라고 느낀 것을 이 곳에 오신 ’여러분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다‘라는 표현이에요. 또 한 편으로는 ’그들이 내게 준 좋은 것들을 계속해서 잊지 않겠다‘라는 의미도 있어요. 방문하신 손님 중에 내가 좋다고 느낀 것을 손님들 역시 좋다고 느꼈다면 “이런 건 어때요? 우리 함께 이런 것들을 느끼고 함양해 보는 것은 또 어떨까요?” 와 같은 질문이기도 하죠. 좋은 것은 나누고 싶은 게 사람의 본성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이런 저런 방식으로 많이 나누고 싶어요.

Q. 퇴사자 인터뷰와 퇴사자들을 초청한 연말 파티, 그리고 퇴사자의 꿈을 응원하며 함께 오른 산행까지… ‘각자의 정상’을 응원하는 마음도 fru만의 특별한 문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와 관련된 생각들을 조금 더 나눠주신다면요.
제 마음 속에는 프루라는 공간을 거쳐 간 사람들에 대한 응원과 사랑이 있어요. 비단 우리 식구들 뿐만 아니라 손님과 저 자신까지. 언젠가 프루라는 곳도 폐업을 하고 사라질 겁니다. 그러고 나면 어떤 것이 남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그렇게 됐을 때 이 프루라는 공간에서 어떤 ‘좋은 것’을 얻어가 마음 속에 뭔가를 지니게 된 식구, 또는 손님들 중 누군가는 또 그 주변에 그 향기를 전하게 될 것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돈이 중요한 세상이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게 식구들에게도 왜 프루를 선택했는지를 잊지 말라고 자주 당부해요. 어떻게 보면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은 제가 당부하기 전에 이미 그들이 프루에 지원함으로 그들 스스로에게 증명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해요. 프루를 떠나 퇴사한 이후에도 그걸 잊지 않길 바라는 제 소망이 퇴사자와 관련한 위의 행사들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퇴사자는 퇴사자 이전에 가족보다도 자주 보던 제 친구들이기도 하니까요. 당연히 잘 지내길 바라죠. 그런 에너지들이 모여 한낱 작은 술집에서 작은 어떤 것이 피어나고, 이내 널리 퍼져나가는 것을 상상해요. 그리고 그게 제가 여기 있었다는 증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인간에게는 그 보다 중요한 것이 없겠지요.


Q. The Beatles, Joni Mitchell, 이상은, 이치현, 조수미, Sting, 이소라, Norah Jones, Luis Bacalov, James Taylor, Antonio Vivaldi, The Velvet Underground, 여행스케치, Maurizio Pollini, Stevie Wonder, Herbie Hancock, 마로니에, Brad Mehldau,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 Bob Dylan, 시인과 촌장, 김정미, 나얼, Blur, Simon & Garfunkel, Nana Mouskouri, 서태지와 아이들, Tom Waits, Maurice Ravel, 언니네 이발관, Pat Metheny Group, 박미경, 벗님들, Claudio Abbado, Gustav Mahler, 신촌블루스, 송창식, 동물원, Prince, Bee Gees, Nine Inch Nails, 윤상, 롤러코스터, Ray Charles… 그간의 추천곡을 보면요. 주인장의 음악 인생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 취향의 뿌리는 어디서 자랐나요. 언제 어떤 계기로 음악을 좋아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아버지가 록밴드의 드러머를 하셨던 적이 있었고 어머니 역시 하드록과 재즈, 클래식을 어느 정도 들으시는 분이셨기 때문에 집에 LP와 CD들이 꽤 있는 편이었어요. 우선 저의 형이 그것들을 가지고 놀았고 저는 형을 따라 그것들을 나름대로 즐겼어요. 그게 취향의 뿌리라고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이겠네요. 그러나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은 또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넌 패션으로 평양냉면 먹니?”와 같은 말처럼 패션을 단지 의복과 같은 것에 한정하지 않고 생활방식의 표현으로 볼 때, 저는 음악을 진정 좋아하기 전까진 음악을 패션으로 들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존 프루샨테를 만나고 그의 방식과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음악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그 후론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며 음악을 듣는 순간 보다 음악 그 자체와 독대하는 시간에 집중하며 음악이 하는 이야기들을 귀 기울여 들어보았죠. 그래서 그가 제게 의미 있는 사람입니다.

Q. fru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어떤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fru는 앞으로 어떤 공간이 되기를 바라시나요?
‘누군가에겐 아무 것도 아닌 가게, 누군가에겐 특별한 가게’.
공간도 사람이 만들어서 그런지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인연이라는 개념이 적용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사람은 “무슨 이런 누더기 같은 가게가 있나, 대표 메뉴도 없고 내가 신청한 노래도 나오지 않는다”라며 기분만 버리고 갈 수 있겠지만 또 어떤 사람은 지저분하게 붙여진 손님들이 남긴 메모나 편지를 보고 감동받기도 하지요. 저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지는 않아요. 그게 가능하다고도 생각 안 하고. 그래서 저는 ‘제 멋’대로 할 뿐입니다. 그리고 제 바람과 관계 없이 프루도 그런 제가 낳은 자식과 같아서 ‘제 멋’대로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하나 바란다면 ‘동네 어딘가에 있는 어떤 오래된 술집’ 정도로 여기게 될 수 있길 바랍니다. 그 바람이 실현 되려면 다름 아닌 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방식으로 오래 운영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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