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N - 알아
노래에서 도입부는 중요하다. 부르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인연을 결정짓는 구간이기 때문이다. 요즘같이 곡 하나에도 인내를 발휘하기 힘든 시대엔 더 그렇다. 가수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5초. 5초 안에 가수는 자신의 노래를 계속 듣겠다는 마음을 상대가 갖도록 해야 한다. 실패하면 스킵의 처단을 피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싸인(sign)은 ‘노래 도입부’의 중요성을 잘 아는 싱어송라이터다. 시작부터 남다르다. 조지 벤슨이 잘 하는, 악기 멜로디와 보컬 멜로디를 평행선에 놓는 고난도 퍼포먼스에서 싸인은 뜻이 없는 스캣을 뜻을 가진 노래로만 바꿔 대뜸 트랙의 문을 연다. 그리고 첫 가사는 곡 제목 ‘알아’를 포함한 ‘알아 네 다리가 나보다 굵은 거’다. 5초도 길었을까. 싸인은 단 3초 만에 청자의 관심을 얻어냈다.
‘알아’는 서둘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싸인은 작곡, 작사, 노래에 편곡까지 직접 맡아 미니멀리즘의 지혜를 받아들인 구조와 템포를 자신의 곡에 녹였다. 먼저 촉촉한 피아노&보컬 멜로디에 상쾌한 퍼커시브 기타가 더해지면서 곡은 윤기를 더해간다. 이 과정에서 코드 진행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 익숙하다가도 이내 클리셰의 함정을 우회해 참신한 음들을 기어이 캐내고 마는데, 평범해 보이는 곡에 계속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노래 역시 조급한 기교보다 느긋한 감정의 여운에 승부를 거는 편이다(딱 한 차례 화자의 감정이 달뜬 지점은 후반부 보컬 오버더빙 때뿐이다.) 편안하고 침착하다. 이처럼 싸인이 의식적으로 성급함과 과시적 작법에 거리를 두는 건 ‘알아’가 고백하는 노래이기 때문이다. 고백이란 대게 서둘면 그르치는 법. 자연스럽지 않으면 고백은 실패하게 마련이다.
‘알아’는 많은 걸 담지 않았으면서 모든 걸 말해내고 있는 수완을 발휘한다. 이런 건 음악과 노랫말이 이상적으로 엮였을 때 종종 들려줄 수 있는 고수의 영역인데, 신인인 싸인은 그런 면에서 타인에게 배워서만 가지곤 배울 수 없는 재능이란 녀석을 곁에 둔 걸로 보인다. 음악도 노래도 하나 같이 영리하다. 가령 횡설수설 속에 숨은 애틋한 논리(‘네가 아는 것도 알 고 / 모르는 것도 알아 / 그렇게 나만 아니까 / 우린 안 되는 거야’)가 그러하거니와, 알게 모르게 들어서 있는 산울림의 인용(‘너의 그 한마디 말도 / 나에겐 커다란 의미’)도 전혀 어색 하거나 억지스럽지 않다. 짝사랑을 해체하고 고백을 완성하는 마지막 두 문단의 수줍은 라임 은 또 어떤가. 그의 다음 곡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글 / 김성대(대중음악평론가)
CREDIT
노래 : 이정표(SIGN)
작곡 : 이정표(SIGN)
작사 : 이정표(SIGN)
편곡 : 오환희, 이정표(SIGN)
건반 : 오환희
기타 : 김재우
믹싱 & 마스터링 : 김주환
프로듀싱 : 김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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