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핫한 플레이스의 힙한 플레이리스트를 소개합니다!
'지금 나오는 노래 완전 좋은데, 이건 다 누가 알고 선곡하는 거지?' 이런 생각, 해 보신 적 있나요?
요즘 '핫'하다는 거기! 감성 충만한 분위기에 흐르는 노래마저 힙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바로 거기!
이 음악을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에도 넣고 싶은데, 주변 소음 때문에 검색에 실패하는 일이 다반사.
그렇다고 점원에게 물어보기는 조금 부끄러운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핫한 플레이스의 힙한 플레이리스트 - 한 달에 두 번, [핫플힙플]이 전하는 흥미로운 선곡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인터뷰: 비스킷 사운드
사진: 오현용
HOT PLACE <동학>
서울대 정문에서 1Km 정도 떨어져 식당과 술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대학동 일대의 녹두거리. 이곳에서 23년째 자리를 지키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핫플레이스 <동학>은 필자도 10년째 찾고 있는 단골 주점이다. <동학>이 사랑받는 이유는 다양하다. 먼저, 막걸리가 구수하고 그에 어울리는 안주들은 맛깔스럽다. 거기에 '귀신 집'이라는 오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을씨년스러운 외관과 흙벽에 나무 기둥을 세워 오두막까지 갖춘 인테리어는 어디에서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독특하지만 또한 그지없이 정겹다. 그러나 이곳의 진짜 매력은 음악이 더해질 때 진가를 드러낸다. 비 오는 날 <동학>에서 듣는 김광석, 유재하, 김현식은 어째서 이렇게 유독 아련하고 코끝을 시큰거리게 하는지를 설명하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직접 경험해본 사람들만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INTERVIEW 오효진
#1. 비 오는 날 생각 나는 녹두거리 주점 <동학>
Q. 안녕하세요, 인터뷰를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동학>을 운영하고 있는 오효진입니다.
Q. 운영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1998년부터 운영했으니까 올해로 23년째 운영을 하고 있네요.
Q. 서울대 정문에서 1Km 정도 떨어져 식당과 술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골목들… 대학동 일대의 이 거리를 녹두거리라고 부르잖아요. 70-80년대 후반에 이쪽에 있었던 막걸리집 '녹두집'에서 유래된 걸로 알고 있어요. 가게를 시작하셨을 때에 비해 최근에는 이 녹두거리의 상권이 예전과는 다른 분위기인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옛날에 비해서 좀 달라지긴 했죠. 지방에서 올라와서 이쪽 고시촌에서 자취하는 학생들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어요. 저희 가게는 주 고객이 서울대 학생들과 고시촌에 있는 고시생들인데 사시가 없어지면서 고시생들은 많이 빠졌고 서울대 학생들도 샤로수길 쪽도 많이 가고 그러니까요.
Q. 세월이 변하면서 녹두거리는 많이 바뀌었지만 <동학>은 23년째 그대로예요. 이제는 녹두거리를 대표하는 주점이 <동학>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뭐 대표까지는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오래되었다는 그런 건 좀 있을 것 같아요. 저희 주점은 서울대 근처에 있다 보니 서울대 2학년들이 신입생들 데리고 오는 곳이거든요. 선배들이 여기엘 처음 데리고 오면 신입생들이 "와 이런 데가 있어!" 이러면서 신기해하고 좋아해 주죠. 그러다가 한 학년 올라가면 세상 멋에도 눈을 좀 뜨게 되고 홍대, 강남 이런 곳에서 놀고 그러지만 다시 신입생 들어오면 1학년들을 데리고 오고 (웃음) 그런 곳이에요.
Q. 여기 <동학>을 한 마디로 설명을 하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슬리퍼 신고 편하게 와서 부담 없이 한 잔 마시고 기분 좋게 돌아갈 수 있는 그런 주점 아닐까 합니다.
Q. <동학>은 동동주와 전이 특히 맛있죠? 인터뷰 끝나고 한잔하고 갈 생각에 벌써 침이 고이는데요, 대표 메뉴도 좀 소개해 주세요.
막걸리, 동동주를 파는 주점이다 보니 전이 주메뉴이고요. 보쌈, 두부김치, 골뱅이 소면, 도토리 무침 이런 것들이 있어요. 제일 많이 좋아해 주시는 메뉴는 역시 전이에요. 파전을 가장 기본으로 많이 찾으시고 여성분들은 감자전, 비 오는 날은 김치전, 몇 년 전에 한 번 해봤는데 꾸준히 좋아해 주시면서 지금은 인기 메뉴가 된 고기전도 있고요.
Q. 외관과 인테리어가 정말 독특해요. 사모님 SNS를 보다가 '귀신 없음', '점집 아님', '무서운 곳 아님', '화장실 아니고 가게 입구 맞음' 이렇게 써 있는 걸 보고 저도 여기 10년 된 손님으로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웃음).
원래는 간판도 없었거든요. 간판을 만든 지금도 종종 그러지만, 예전에는 지나가시는 분들이 '도대체 여기는 뭐 하는 곳이냐' 하면서 문을 열어 보는 일이 많았죠. 지나가는 분들 중에도 "여기 거기잖아 귀신 나오는 집" 이렇게들 얘기 많이 하셨어요 (웃음). 내부도 23년째 그대로고 요즘은 이런 데가 잘 없긴 하죠.
Q. <동학>은 세월만큼이나 손님들의 추억도 많이 쌓여 있는 곳이 아닐까 해요.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순 없겠지만 요즘 인테리어의 깔끔한 모습은 아니니까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사실, 이전에는 꾸준하게 도배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어떤 손님이 저한테 자기가 쓴 글이 없어졌다고 그러는 거예요. 알고 보니까 여기를 본인이 쓴 그 글을 보려고 찾아왔는데 그게 덮여서 없어졌던 거죠. 그 얘길 듣는데 뭔가 '띵' 하고 오는 게 있었어요. '아 이게 다 추억이고 소중한 것들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청소나 이런 걸 최대한 깨끗하게 신경 쓰면서 원래의 형태들은 안 건드리고 있어요. 여기를 추억으로 좋게 간직해오고 있는 분들도 많아서 그 느낌 그대로를 좀 보존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아날로그 한 예전 느낌을 고집해보는 거죠. PC도 POS 기계도 안 두고 계산기 두들겨가면서 이렇게 예전 장부 그대로 기록하고 그렇게 장사하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음악이 제일 아쉽죠.
Q. 아쉬우시다고요?
사실 저희는 모든 음악을 CD랑 카세트테이프로 틀었었어요. 손님들 분위기 봐서 신나는 걸로 바꿔 틀고 빗소리 나면 또 감성적인 음악도 틀고 그렇게 다 듣고 그러면 갈아서 뒤집어서 끼우고 이렇게 했는데 그렇게 너무 오래 매일 틀다 보니까 CD도 망가지고 테이프도 늘어나고 그런 거예요. 그래서 그걸 다 가져다가 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아깝죠. 그래도 이 안에서 나름의 아날로그를 유지하기 위해 스트리밍으로 트는 게 아니라 예전 좋은 음악들을 다운로드해서 MP3 기계로 틀어 드려요. 이 MP3플레이어도 한번 고장 나서 중고로 이 모델을 다시 구해서 들려 드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얘도 충전이 잘 안 돼서 항상 충전 상태에서 틀어드리고 있어요 (웃음).
Q. 선곡은 직접 하세요? 어떻게 하세요?
선곡은 같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형님이랑 저랑 직접 해요. 예전 노래 중에 가게에 어울리는 좋은 노래들 위주로 고르는 거죠. 어디 가서 좋은 옛날 노래 나오거나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거나 갑자기 생각이 나거나 하면 기억해 뒀다가 가게 플레이리스트에 넣고 또 한 번 넣은 리스트가 지겨우면 또 다른 음악들로 넣고 그렇게 하는 거죠. 그렇게 넣어 놓은 음악들도 손님들 분위기나 날씨, 이런 걸 봐서 거기에 맞게 바꿔가면서 틀어 드려요. 비가 오면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틀고 군대 얘기 나오면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또 봄에 비가 온다 그럼 신중현의 <봄비> '어 화요일인데 비가 오네?!' 그럼 <화요일에 비가 내리면> 수요일에 비가 내리면 <수요일엔 빨간 장미> 이런 식으로 틀어드리고 그러는 거죠.
Q. <동학>에서 가장 많이 틀었던 노래들을 꼽는다면요?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김광석의 '사랑했지만', '이등병의 편지', 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이문세의 '소녀', '난 아직 모르잖아요', '세월이 가면'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많이 틀었던 것 같아요.
Q. 그동안 <동학>에서 흐르던 많은 음악 중에서도 사장님이 정말 좋아하는 단 한 곡을 꼽는다면요.
원래 알고 있었던 노래는 아니고 <동학>을 하면서 알게 된 노랜데요. 좋은 노래야 워낙 많지만 개인적으로 하나만 꼽으라면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예요.
Q. 음악이 공간에 주는 영향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사장님 생각을 듣고 싶어요.
제가 말주변이 없고 표현력이 부족해서 제 생각이 잘 전달될지 모르겠네요 (웃음). 음악의 힘은 그냥 어마어마한 것 같아요. 그리고 덧붙이자면 삶이랑 같이 쭉 가는 그런 게 음악 아닐까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사랑할 때나 이별할 때나 언제나 음악이 있고, 또 그 음악을 들으면 추억에 잠기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하고요. 사실, 운영을 막 시작했을 무렵은 어리기도 했고 뭘 좀 모르기도 했는데 이 가게를 하면 할수록 음악의 힘을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저희 가게는 정말 음악이 중요한 곳 같아요. 음악 때문에 오시는 분들이 정말 많거든요.
Q. 80년대부터 90년대 가요가 주로 흘러나오는 것 같아요.
초창기에는 민중가요 위주로 틀었어요. 그런 노래들을 많이 찾으시기도 했고요. 양희은, 김민기, 정태춘과 박은옥 이런 분들의 음악들 위주로요. 술 먹다가 이런 민중가요 나오면 모르는 사람끼리 다 같이 일어나서 건배하고 한 잔씩 서로 주고받고 그랬었죠. 시대도 바뀌고 분위기도 달라지고 그러면서 오시는 분들이 찾고 선호하는 음악들도 조금씩 변화를 했고요. 서서히 지금의 음악의 음악들로 자연스럽게 바뀌게 된 것 같아요.
#3. 추리닝에 슬리퍼 신고 부담 없이 한 잔!
Q. 세월의 변화와 함께하는 주점이 <동학>이 아닐까 하는데요. 23년째를 맞는 감회가 어떠세요.
너무 오래 이걸 하고 있으니 솔직히 지겹고 그럴 때도 있었어요. 저희는 음악도 그렇잖아요. 다른 가게는 신곡도 듣는데 우리는 들었던 노래 또 듣고 (웃음). 그런데 최근에 들어서는 한 가게로 오래 버텼다는 자부심이 좀 생긴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요즘에서야 사람들에게 조금은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어요.
Q. 운영을 해오면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들이 있었다면요.
손님들이 술 먹고 계산하고 나가셨다가 과일 사가지고 오셔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고 주고 가세요. 저희는 안 받겠다고 하면 던져 놓고 도망가시고 그런 손님들이 종종 있어요. 과일 때문이 아니라 그 마음이 너무 고맙잖아요 생각이 안 날 수 없죠. 그리고 십수 년 만에 오신 분이라던가, 학생 때부터 오던 분이 결혼해 아기 데리고 오셔서 "여긴 그대로여서 좋다" 이런 얘기해 주시면 너무 좋아요. 또,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하는 서울대 학생들이 신입생 때 여길 알게 되어서 이후에 부모님 모시고 여길 또 오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렇게 오신 부모님들이 "우리 딸이 여기 알려 줘서 같이 왔는데 너무 맛있게 잘 먹고 가요" 이런 말해 주시는 데 그럴 땐 정말 너무 좋죠.
Q. 2020년은 모두에게 그렇듯이 <동학> 역시 쉽지 않은 한 해였을 것 같아요. 당장은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겠지만 점차 좋아져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떤 걸 해보고 싶으세요?
2020년은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난 한 해였어요. 학생들이 학교를 안 가다 보니까 자취를 안 하고 지방에 내려가 있어서 거리에 사람들 자체가 많이 빠졌죠. <동학>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가족들이랑 보냈어요. 학생들이 편하게 와서 한잔할 수 있는 상황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사실 이전에 다른 학교 인근에도 주점을 운영한 적이 있는데 상황이 좀 괜찮아지면 다시 다른 학교 쪽에도 이런 분위기의 주점을 만들어 보고 싶은 계획은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앞으로의 상황을 계속 지켜봐야겠죠.
Q. <동학>은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는지?
일상에서 그냥 가볍게 오갈 수 있는 편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비 오면 자연스럽게 생각나고, 언제든 슬리퍼 신고 와서 막걸리 한 잔 편하게 마시고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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