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시키아 KUSIKIA
Alternative Modern Creative Piano Trio
전통의 가치와 관련해, 재즈는 우리에게 매우 이율배반적이고 양가적인 예술적 태도를 제시했다. 전통의 고전적 어법을 중시하라는 것이 하나, 그 전통에 머물지 말라는 것이 또 다른 하나. 대척점에 놓인 이 시선들 때문에 연주자들은 늘 곤혹스럽다. 더구나 후천적으로 익힌 재즈를 자신의 표현 양식으로 삼은 대다수의 한국 연주자들에게 그 고민의 두께는 배가되기 일쑤다. 그럼에도 연주자들은 둘 중 어느 하나에 자신을 몰입시킬 수밖에 없다. 두 태도를 양립시키라고 말하는 건 너무나 무책임하고 상투적인, 비현실적인 요구에 불과하다.
피아니스트 김지현, 베이시스트 최장군, 드러머 여정민으로 이루어진 쿠시키아(Kusikia, 스와힐리어로 ‘듣다’를 의미한다)는 적어도 이 난제에 대한 고민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듯하다. 훗날 구체적인 어법의 변화를 꾀할 수는 있겠지만, 미학적인 측면에서 기약 없는 ‘심적 갈등’을 반복할 바에 하루라도 빨리 ‘몸’으로 부딪혀 결과를 내보겠다는 정공법을 택했다. 혹시 이들의 음악을 들으며 막연한 콘셉트나 추상적인 이미지를 그리려는 오독(誤讀)은 범하지 않기 바란다. 쿠시키아는 몸이, 혹은 ‘몸으로 들어야 하는 음악’을 연주한다.
쿠시키아는 한국의 그 어느 피아노 트리오와도 닮아 있지 않다. 독특한 타건으로 다양한 박자와 이질적인 테마를 예상치 못한 구성에 대입시키지만, 그렇다고 이를 수학적으로 이해하려 들면 그것이야말로 쿠시키아가 쳐둔 함정에 빠지는 일이다. 쿠시키아는 정서보다 ‘액션’을 쫓는다. 복잡해 보이지만 직관적인 모티프를 쏟아내고, 많은 얘길 담으려 애쓰는 대신 명확한 하나에 대한 그들의 해답을 무덤덤한 표정으로 갑작스레 (훅슛처럼) 던져 넣는다. 그 도발적인 액션을 (리바운드로) 되받기만 하면, 비로소 쿠시키아의 매력을 알아챌 수 있다.
모던 크리에이티브(Modern Creative)와 프리 재즈(Free Jazz) 같은 표현들이 쿠시키아의 정체성을 설명하는 데 필요할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자유 즉흥연주를 즐기며, 1990년대의 다양한 음악 장르에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고전적 전통을 바탕 삼아 다른 스타일을 추구했다기보다 애초부터 얼터너티브(Alternative)의 자세로 경기장에 들어섰다는 말이 적확하겠다. 쿠시키아가 재즈계에 새로운 자극을 남긴다면, 그건 통쾌함으로 치환된 당돌함 때문일 것이다. 역사가 그랬다. 청출어람이라 얘기된 대부분의 신성들은, 사실 출발 자체가 달랐다.
김현준(재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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